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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by 앗가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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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정말 이상한 한 해였습니다. 제조업을 바라보면서 시작한 프로그래밍에서 게임 분야로, 프론트를 열심히 해서 게임 서버로, 인생에서 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go언어로, 아예 무엇인지도 몰랐던 클라우드로 인생이 흘러가게 됐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어쩌면 에자일을 관통하는 의미이기도 한 문장이 저에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제가 한 선택에 대한 집착을 내려두고 올해의 모든 것을 선택해 왔으니까요. 그렇게 저의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과정이 끝났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 끝남이 너무나도 어색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직 저가 소마에 이별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무엇인지 모를 것 때문에 고생한 올 한해를 뒤로 두고 맘을 편히 쉴 수 없었습니다. 뭔가 개발과 일을 해야 될 것 같고. 뭔가 강의를 들어야 할 것 같고. 뭔가 데일리 스크럼을 계속 진행해야 할 것 같고... 말입니다. 왜 이렇게 인프런을 기웃거리고 스스로를 구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무슨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말일까요.

그러다가 예전에 사두고 한 페이지 읽고 덮어둔 책을 다시 꺼냈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인문서적입니다. 책을 작년 전체를 통틀어서 지식을 강의로 듣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책을 0권을 읽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러다 소마가 끝난 이 갈증에 책장을 둘러보다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제가 책을 펼치는 날이 오다니... 진짜 변화의 해가 맞긴 했나 봅니다.

이 책은 The Gateless Gate로 번역되는 무문관, 즉, 문이 없는 문에 대하여 다룹니다. 문이 없는 문이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냐 싶을 수 있지만, 그러한 문이 48개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을 지나가야 합니다. 문이 없는데 무엇을 문이라고 인식하고 통과할 수 있을까요? 문이 없으니 문을 찾으려 하면 통과하지 못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제목도 모순적인 느낌이 납니다. 손을 떼면 죽을 상황에 오히려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48개의 문과, 책의 제목이 우리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으로 살면 남과 분명히 구별되는, 문이 없는 문을 통과하는 방법이 보인다고 합니다. 비로소 남이 말한 답을 자신이 하지 않음으로 자신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무문관을 통과하는 방법은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자연스러운 답을 생각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사는 그 방법을 여러 방법 중에서 불교의 철학의 방법으로 소개합니다.

서암 사언 화상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예!"라고 말했다.  

무문관 12칙, '암환주인(巖喚主人)'


개나리는 개나리로, 히아신스는 히아신스로, 장미는 장미로, 저는 저로 작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작년의 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작년의 저로 살기를 원했나 봅니다. 여러 깨달음을 얻었던 그 순간의 기쁨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무문관을 굳게 지키는 스님이 이를 보고 계셨다면 뺨따귀를 후려갈겼을 것 같습니다😄😄.

이런 과거에 집착하는 마음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없다는 생각은 있다는 생각보다 무엇인가 하나가 더 많다고, 존재하는 것이 사라짐을 인지하는 순간 없다는 인식이 들어오게 된다고, 이미 없어진 것에 집착하면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에 서로잡힌다고. 이미 마음이 과거를 눈여기고 있는데 새로운 가르침이 들어올 자리가 있겠냐고.

뺨따귀를 말로 대신 맞았다고 하겠습니다.

책을 읽으면 과거 소마를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던, 기술 외의 부분들이 기억나곤 합니다. 이때 이런 느낌을 얻었지 하고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경험 때문에 몇 개의 문은 쉽게 통과되기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든 문을 스스로 헤쳐나가지 못하는 것은 제가 아직 제 삶의 주인공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은 것 같아 즐겁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프루스트의 말처럼 개개인에게 대응되는 70억의 세계가 떠오르는 23년의 아침을 맞이하면서 올해의 저는 올해의 스스로의 세계를 그려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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